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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magazine.kcue.or.kr/last/popup.html?vol=148&no=3568 // 조무남 (강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인류 지성사에서 대학이란 무엇인가? 그 곳은 ‘자유로운 교과(liberal arts)’를 가르쳐야 하는 곳인가, 아니면 ‘유용한 교과(useful subjects)’를 가르쳐야 하는 곳인가? 역사적으로 대학은 이러한 질문들과 더불어 오늘에 이르렀다`1). 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학은 이와 같은 고전적 질문보다는 다음과 같은 다분히 성찰적인 질문에 마주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우리의 대학은 취업을 위한 수단이나 아니면 마지못해 거쳐야 하는 사회적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논고에서 심각하게 묻고자 하는 질문이다.

Ⅰ. ‘자유로운 교과’와 ‘유용한 교과’ 사이의 갈등과 조화

‘대학의 교육과정이 무엇으로 구성되어야 하느냐?’라는 물음은 길고 긴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여가(餘暇) 안에서 자유롭게 탐구하는 교과와 생업에 유용하기 때문에 탐구하는 교과를 구분한 최초의 본보기였다. ‘대학이 자유로운 교과를 가르쳐야 하느냐, 아니면 유용한 교과를 가르쳐야 하느냐’라는 질문은 고대사회에서 전적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이 ‘이론적인 것이냐, 아니면 실제적인 것이냐?’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사회는 실제적 삶보다 이론적 삶을 선호했다.

교육과정의 시계 바늘을 지금으로부터 조금만 뒤로 돌려봐도 우리는 대학이 자유로운 교과를 추구했다는 역사적 흔적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찰스 다윈 시대 케임브리지대학은 자유로운 교과로서 수학과 고전을 교육과정의 중핵으로 삼았다. 케임브리지대학 교육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한 휘웰(Whewell)에게 자유로운 교과는 우리가 종사하게 될 특수한 직업이나 전문 영역에 관계 없이 대학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이었다(Cambridge University, 1850, p. 617`;`Whewell, 1845, p. 154). 케임브리지대학의 안과 밖에 있었던 다른 학자들도 휘웰의 생각에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밀(Mill)과 헉슬리(Huxley)가 그 가운데 특별했다. 그들은 자유로운 교과가 전공의 여하를 막론하고 대학의 기본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Mill, 1836, 1867; Huxley, 1880, p. 73). 밀은 1867년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총장 취임사에서 “대학은 직업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며, 학생들에게 법률가, 상인, 또는 기술공이 되도록 가르치기 전에 보편적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라 했다(Mill, 1867, pp. 6~7). 19세기 초 케임브리지대학 졸업생들은 문필가였고, 정확하고 엄밀한 사고를 했으며, 비판적 안목과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고 전한다(Garland, 1980, pp. 134~135).

자유로운 교과를 탐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대학교육의 존재 의의를 뒷받침해 왔다. 사실 이와 같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교육의 목적』을 쓴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직업교육이나 전문교육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특정 영역의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그런 지식을 다른 지식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지식’으로 분류했다(Whitehead, 1932). 그에게 있어서 무기력한 지식은 자연, 사회, 인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지적 안목을 형성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나 장인(匠人)의 그것처럼 당장 쓸모는 있으나 폭이 없는 지식, 용인(庸人)의 그것처럼 깊이가 없는 지식이었다. 지난 세기 시카고대학의 헛친스(Hutchins) 총장도 법학도에게 가르쳐야 할 교과는 직업을 위한 유용한 교과가 아니라 지성을 연마하는 교과라고 했다. 대학 교육과정 역사에 남길 이야기다(Hutchins, 1936).

그러나 근대사회에서 산업의 발달은 교육적 전통을 크게 흔들었다. 산업화가 근대사회의 지식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인가를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지성인들의 반작용이 없을 리 없다. 뉴만 추기경의 『대학의 이념』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쓰인 책이다. 이 책은 산업사회의 지식관이 그의 고전적 지식관, 즉 자유로운 교과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간섭하고 방해하는 데 대하여 경계의 벽을 높인 흔적들로 가득하다(Newman, 1852). 『대학의 이념』에서 뉴만은 19세기 중엽의 산업화로 인한 문화적 침체와 정신적·사회적 병리 현상을 크게 염려했다. 이 염려는 결국 ‘대학교육이 자유로운 교과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세상에 내놓는 일로 이어졌다. 『대학교육의 범위와 본질에 관하여』가 그것이다(Newman, 1859). 아마도 『대학교육의 범위와 본질에 관하여』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적인 교육과정관, 즉 자유로운 교과의 가치와 유용한 교과의 수단적 효용성을 저울질하면서 심각하게 고민한 자국을 남긴 기록도 드물 것이다. ‘효용성이 없는 지식은 정말 가르칠 가치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교과의 탐구에 대한 회의도 끊이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자유로운 교과와 유용한 교과에 관한 주장들 사이에는 늘 갈등과 대립이 있어 왔다. 같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면서도 자유로운 교과탐구에 가치를 둔 플라톤(platon)과, 유용한 교과에 가치를 둔 이소크라테스(Isocrates)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그 효시였다.

그런데 이소크라테스는 물론이거니와 유용한 교과의 가치를 역설한 사람들은 자유로운 교과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거부하는 배타적 관점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자유로운 교과와 유용한 교과의 조화를 꾀했다. 기원후 5세기에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Capella)가 『필로로기아와 머큐리의 결혼(The Marriage of Philology and Mercury)』을 쓴 동기도 이와 같았다(Capella, 1977). 그는 자유로운 학문의 상징으로서 필로로기아와 유용한 교과의 상징으로서 웅변의 수호신 머큐리를 결혼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카펠라에게 있어서 학문은 단순한 사색이 아니고, 웅변은 단순한 입놀림이 아니었다. 학문과 웅변은 그에게 있어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할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교육철학자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도 그 발상에 있어서 『필로로기아와 머큐리의 결혼』의 복사판이라 할 만큼 이론과 실제의 통합을 역설한 책이다.

자유로운 교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화이트헤드조차 이론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을 분리시키고 실제적인 것을 교육의 밖으로 몰아낸 것은 플라톤의 악덕이었다고 혹평했다(Whitehead, 1932, pp. 77~78). 카펠라가 주선한 이론과 실제의 결혼을 다시 화이트헤드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결혼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니던가. 더욱이 이론적인 것은 실제적인 것에 바탕을 둘 때, 그 실체를 가장 바르게 드러내지 않겠는가(조무남, 2004). 교육에서 심각하게 되새겨야 할 화두다.

대학에서 유용한 교과는 더욱 인정을 받게 됐다. 19세기에 케임브리지대학의 수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의 가치를 유용성에 두었다. 배비지(C. Babbage)는 그가 대학을 떠날 무렵 수학을 순수하게 탐구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실제적 문제와 관련시켜 연구했다. 매한가지의 경향이 물리학과 천문학에도 나타났다. 같은 대학의 천문학자 에어리(G.B. Airy)는 천문학 연구에서 사변적·이론적 연구보다 실험적·응용과학적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로운 교과의 가치를 그토록 열렬하게 주창했던 휘웰도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하면서 순수 수학의 자리를 견고히 하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조차 대학 교육과정의 방향이 유용한 교과관으로 기우는 경향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Airy, 1859;`Peacock, 1830;`Todhunter, 1876, p.`76).

위와 같은 경향은 영국뿐만 아니라 일찍이 세속화(secularisation)된 미국 사회에서도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정치적 분위기까지 가세됐다. 프랭클린과 제퍼슨은 대학과 사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19세기가 저물 무렵부터 미국 대학들은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치들을 포용함으로써 새로운 이념적 변화의 장을 열고 있었다. 시카고대학의 하퍼(Harper) 총장이 쓴 연례보고서는 미국 대학교육의 변화를 재촉했다. 이 보고서의 논지는 대학이 실제적 삶으로부터 거리가 먼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Harper, 1893, p. `209;`1902. pp. 1xxiv~1xxv). 미국 유명 대학의 총장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아슈비(E. Ashby), 도즈(H. Dodds), 커(C. Kerr), 퍼킨스(J. Perkins), 코넌트(J.B. Conant)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다.

시의 적절하게 하버드대학의 자유교육과정이 이론중심 강좌의 전통을 벗어나고 있었다(The Harvard Committee, 1946, pp. 64~73).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만 하버드의 교육과정 모형은 실천적 지식의 추구를 목표로 삼았다. 코넌트 총장의 교육관이 반영된 것이다. 같은 경향을 우리는 시카고대학, 존스홉킨스대학, 컬럼비아대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John’s Hopkins University, 1902, pp. 58~62; Harper, 1905). 그러나 우리는 케네디 대통령의 뜻에 맞았던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총장 클라크 커의 이야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대학이 ‘고슴도치’보다 ‘여우’의 특성을 가진 교육과정을 짜야 한다고 했다`2). 세속화된 오늘날의 대학은 ‘고슴도치’가 상징하듯 단일하고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여우와 같이 특수하고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상아탑에 한정되는 이론교육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청하는 실용적 지식을 가르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Kerr, 1963).

지식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전통적 교육관은 지식을 실제적 목적으로 추구하는 쪽에 길을 열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Bridges, 1992, pp. 91~106; Hodkinson, 1991, pp. 73~88; Lewis, 1994, pp. 199~217; Williams, 1994, pp. 89~100). 결국 대학 교육과정의 역사적 궤적(軌跡)은 자유로운 교과와 유용한 교과 사이를 왕래하는 시계추가 그려낸 축이었던 셈이다. 이 축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든, 대학이 그려내고자 한 가장 완전한 교육과정 모형은 자유로운 교과와 유용한 교과 사이의 균형이라는 점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이 지금까지 잡아낸 문화의 두 패러다임이었다. 대학 교육과정의 역사를 이끌어 온 시계추는 지난날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두 문화의 패러다임 사이에서 균형을 갖춘 최적의 논리를 찾아 진자운동을 계속할 것으로 믿는다.

Ⅱ. 대학 교육과정 운영 원리

그러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그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는 대학이 좇아야 할 이념의 부재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 교육과정 운영에 역력히 드러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일반대학은 학생들의 취업률 제고를 가장 중요한 책무로 삼고 있다. 졸업생들의 취업 상황 통계표가 대학 총장실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취업률 제고를 위한 대학의 노력 자체에 있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이와 같은 대학이 설립 당시에 과연 직업대학(professional school)으로 출범했으며, 직업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을 편성했고, 그 교육과정 운영에 적합한 교수진을 갖췄느냐에 있다. 사실 대부분의 대학은 타성적으로 ‘심오한 학술이론 탐구’라는 어구를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이 어구는 대학사회의 유행어였다. 학칙 제1조에 이 유행어를 성찰 없이 기록하는 것은 차라리 거부하지 못하는 신화였다. 물론 교육과정도 직업교육과 거리가 먼 이론 교과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수진들도 관련 직업 분야의 경험이 없이 일반대학원에서 이론 분야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정체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일반대학’으로 인가됐을 뿐, 정체성을 찾아 특성화시키는 후속 작업을 하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 말하자면 설립인가는 받았으되 ‘미션’이 정해지지 않은 교육기관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3). 대학이 학생과 국가에 하는 뚜렷한 약속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많은 학생이 막대한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투자하면서 정체성 없는 대학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런 경우의 학생들에게 대학의 교육과정은 무용지물이 아니면 장애거리다. 이런 대학에서 학생들이 취득하는 학점은 그들이 장차 종사하게 될 직업과 무관한 내용들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들이 이수한 교육과정과 취득한 학점은 단지 대학을 졸업했다는 증표일 뿐 결국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대학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도, 자유롭게 이론을 탐구하는 학생에게도 걸맞지 않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은 자유로운 교과를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둘 것인지, 아니면 유용한 교과를 가르치는 데 역점을 둘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둘의 조화를 꾀하든지 말이다. 이는 이 짤막한 논고가 제안하고자 하는 세 가지 대학과 교육과정 모형이다.

이 제안을 따르면, 우선 직업훈련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문중심대학’을 예로 들 수 있다. 학문중심대학은 순수이론을 탐구하는 소수 학생을 위한 소수의 대학이다. 순수이론 탐구는 그 자체로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오하고 원대한 미래 세계를 열어준다. 인류의 현실적 꿈을 실현하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 기술은 순수이론을 탐구하는 기초학문의 성장과 발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학문중심대학이 운영하는 교육과정은 마땅히 ‘학문교육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문교육과정을 채택할 만한 대학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럴 만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정체성 없는 운영을 하는 대학이 있다면, 그런 대학이야말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순수이론을 탐구하는 학생도, 직업을 가질 학생도 제대로 배출해 내지 못할 것이다. 또한 자랑할 만한 연구결과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교수진을 확보하거나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용한 교과를 가르치는 대학의 수가 점점 증가하는 것은 다행스럽다. 이런 대학을 학문중심대학과 구분하기 위해서 ‘기술중심대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기술중심대학의 출현은 사회적 요청이다.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산업, 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고등기술을 요청할 만큼 고도로 전문화됐다. 이런 분야를 떠맡을 고급기술인 양성은 이제 대학의 책무가 됐다. 이 시점에서 학문중심대학을 표방하는 많은 대학들은 기술중심대학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들은 지금과 같이 정체성을 상실한 졸업생 대신, 일자리에 적합한 인력을 배출함으로써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기술중심대학은 전문화된 대학이다. 따라서 그 교육과정은 마땅히 전문화된 ‘기술교육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전공 분야를 백화점처럼 수없이 늘어놔서는 안 된다. 기술중심대학은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전문적 영역으로 특성화될수록 교육적 효과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대학은 관련 전문 분야와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 전문 분야의 기술과 인적자원을 교육내용과 교수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영국처럼 의과대학을 병원이 운영한다든가, 교사교육을 학교 현장이 떠맡는 경우를 우리는 좋은 범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조무남, 2006).

그러나 당장 기술중심대학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대학은 ‘종합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른 대학으로부터 구분하기 위하여 ‘종합대학(comprehensive college)’으로 부르고자 하는 이 대학의 모형은 사실 다니엘 벨(Daniel Bell)로부터 얻어 온 아이디어다. 벨은 1966년 컬럼비아대학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교양대학으로서 컬럼비아칼리지[문리과대학]의 개혁방안을 제시했다(Bell, 1966).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로서 컬럼비아대학이 정체성 문제로 고민에 빠졌을 때의 일이었다. 그의 제안은 컬럼비아칼리지가 자유로운 교과와 유용한 교과의 조화를 취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4년으로 구성된 컬럼비아칼리지의 첫 학년은 일반 교양교과를, 둘째와 셋째 학년은 특정 전공교과를, 그리고 넷째 학년은 다학문적 접근을 통한 유용한 교과를 직업과 관련된 현장과 연계시켜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양과 전공과 직업교육을 망라하는 종합 교육과정이었다.

벨의 아이디어는 그럴듯해 보인다. 이론에 치우친 교육과정을 통해서 획득한 지식은 실제에서 감지한 지식과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부터 배우는 것이 없는 교육은 마치 실험 없는 과학교육과 같다. 과학교육이 실험실에서 이루어져야 하듯이, 유용한 교과교육 또한 ‘현장’이라는 실험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과 교육과정을 위와 같이 구분하는 것이 자칫 자유로운 교과와 유용한 교과, 이론과 실제를 배타적인 논리로 잘못 이해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학을 특성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대학을 온통 취업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을 반드시 포함하지도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이런 점에서 20년 동안이나 하버드대학 총장을 지낸 보크(D. Bok)가 “대학은 시장 속에 있지만 그곳을 온통 지식과 기술을 파는 곳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Bok, 2003)”라고 한 말을 여기에 남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학은 사회의 요청에 민감해야 하지만, 그 고유한 목적까지를 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에서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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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전적 자유교육의 개념 안에서‘자유로운 교과’는 정치, 종교, 경제, 직업적 요구 등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탐구하는 이론 교과를 일컫는다. 여기에 비하여‘유용한 교과’는 직업이나 생산에 관련된 실제적 지식을 탐구하는 교과를 의미한다.

2) ‘ 고슴도치’와‘여우’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아킬로쿠스(Archilochus)가 처음 사용한 비유어였다. 벌린(Berlin,1953)이 이를 다시 사용하였다.

3) ‘ 미션(mission)’은 대학의 목적과 목표와 이를 성취하기 위한 행동 강령 내지 상세화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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